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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 - 유성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by :-)♥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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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전자도서관으로 처음 책을 빌려보았습니다. 유성호 작가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블로그에서 추천 글도 많이 보았고 책 제목도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에게 너무 흥미로워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매주 시체를 보러가는 저자의 직업은 법의학자입니다. 법의학이란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밝혀 사망 종류를 법률적으로 조언하는 의학의 한 분야라고 합니다. 흔히 ‘CSI’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에 대한 의학적 판단과 증언을 하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합니다. 하지만 국내에 법의학자는 현재 40명에 불과하여 학회로 모일 때에도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의 사고로 국내에 법의학자가 전멸하게 될 위험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법의학자인 저자는 매주 월요일 검시를 하며 시체를 마주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오히려 죽음보다는 삶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1부에서는 저자가 다뤄온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개하는데 말도 안 되는 범죄 사건들이 많아서 자주 뒷골이 섰습니다.

 

우리나라 자살의 특징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흔히 높을 것으로 생각하는 입시로 인한 청소년 자살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았을 때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내적 가치관의 부재임에 저자도 동의한다고 합니다.

 

나 또한 유물론적 입장을 갖는 과학자로서 죽음이란 특정한 생명의 실패가 아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생각한다저자의 말처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통되는 질서입니다. 어떠한 인생을 살든 간에 인간이라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지만 정작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피하다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나의 나레이션을 나 자신이 마지막으로 장식하며 내 인생의 마지막을 내가 종결시켜야 한다고 반복합니다.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 사망자도 매일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망 관련 기사를 보면 제목에서부터 기저 질환자거나 고령의 환자들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며 죽음에 대한 그 체감 강도(?)를 낮추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합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이라고 해서 그 죽음이 당연한 것은 절대 아닐텐데 말입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몇 년, 몇 십년의 시간이 더 주어졌을 사망자들이 이 책의 저자가 반복해서 말하는 본인의 나레이션으로 생을 마감할 시간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과연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질문해보게 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시 구절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죽음은 준비되고 예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죽음을 원한 환자들이 모두 그 죽음의 버튼을 눌렀을까? 그렇지 않았다. 신청자의 60퍼센트만 누르고, 40퍼센트는 누르지 않았다. 말로는 번복하지 않고 죽음의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시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나 또한 유물론적 입장을 갖는 과학자로서 죽음이란 특정한 생명의 실패가 아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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