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제주 여행에서 방문한 작은 책방에서였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에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술술 읽히는 문체는 언제 어디서든 부담없이 읽기 딱 좋았습니다. 게다가 ‘메모’라는 주제에 대한 아무튼 시리즈라니. 최근 기록에 대한 열망(?)을 가진 저로써는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모. 메모를 하면 뭐가 좋을까.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의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뜬금없이 어떤 생각들이 스칠 때도 있습니다. ‘집에 갈 때 화장솜을 꼭 사가야지’같은 사소한 to do list부터 인생의 정지된 한 순간에 대한 내 감상까지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념들을 기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뒤늦게 기억이 나지 않아 ‘아 메모해놨어야 했는데’ 아쉬워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저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휴대폰의 메모장 기능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냥 구불구불 흘러가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와도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저자가 ‘메모주의자’가 된 계기. 메모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저자의 말에 200% 공감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자기계발서처럼 나를 자극해주는 문장들이 많아서 기억하기 위해 바로 '메모'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바뀌려면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것, 믿음직한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p.34~35)
내일을 위해서는 그 전날 밤이 중요하다는 많은 조언들이 있습니다. 퇴근 후 폰만 보다가 정신없이 곯아떨어지는 밤이 아닌 그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을 만들어보겠습니다. :)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p.45)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단련’의 결과다.(p.47)
굳이 꼭 사람을 비교하려면 각자가 가진 이상으로 비교하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자. 지난해의 나와 올해의 나를 비교하자.(p.59)
2부는 저자의 메모 그 자체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흥미로운 메모들이 많았습니다. 몇년 전 죽은 장애를 가진 콘도르의 추모식 이야기,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 선생님들, 잠수사의 생일과 그들의 꿈의 이야기, 태평양 전쟁에 관한 이야기까지.. 물론 저의 메모들은 이런 깊이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쩌면 낙서도 아닌 것이, 일기도 아닌 것이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가득한,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가득찬 끄적임 노트? 정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는 저자의 말처럼 메모를 하면서 나 스스로 끊임없이 사유하고 세상을 관찰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 생각을 단련하면서 그렇게 좀 더 나은 나의 내일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해봅니다.
메모는 관능적인 일이기도 하다. 내 몸에 좋은 이야기를 붙이고 그 이야기에 몸과 마음이 섞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모는 좋은 쪽과 한편이 되어 치르는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나씩 하나씩 답을 찾고 그 작은 답을 모아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랑스러운 흔적이기도 하다.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p.63)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면 좋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다. 꼭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 같다. 그리고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은 반드시 침묵을 데리고 온다. 시간은 잠시 정지된다. 삶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자기 모습을 만든다. 삶은 구불구불 흘러가다가 잠깐 멈추고 정지된 시간 속에서 단단해진다.(p.64)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에 대한 명쾌한 통찰 - 알랭드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0) | 2021.01.14 |
---|---|
알고보면 쓸모있고 신비한 과학강의- 정재승 <열두 발자국> (0) | 2020.12.26 |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 - 유성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0) | 2020.12.19 |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 히가시노게이고 <편지> (0) | 2020.11.30 |
댓글